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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전기, 그 이상은 없나?

by At Information Technology 201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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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라는 것은 꽤나 위험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은 나름의 진리로 받아들여 그 팩트가 부정이라는 사실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말싸움으로 재미난 광경을 연출하나, 공적인 관계에서는 논리 있는 말싸움으로 서로가 그럴 듯한 의견을 나눈다.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게, 자신만의 나름의 진리가 때로는 공적인 관계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고정관념의 무서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다.




얼마 전 내가 쓴 ‘황우석 박사와 스티브 잡스’ 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황우석 박사에 대해 내가 조금도 모른다고 비난까지 하였고 자신이 믿는 지식만을 내세워 사실이 무조건 진실이라는 듯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학에 관련된 문제를 언론을 경계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이렇듯 고정관념이 생기기는 쉬워도 그것을 깨트리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전기라는 존재도 예외는 아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전기는 생존하는데 있어 꼭 필요하다. 전기로 불을 키고 어떤 데서는 데스크톱을 사용 하는가 반면 병원에서는 전기로 수술과 같이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전기는 없어서는 안 될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존재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선을 달리해서 본다면 영락없는 고정관념일 뿐이다. 전기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잠시 글의 분위기를 바꾸어보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동북부 지진의 참담한 결과였다. 지진으로 끝날 줄 알았던 동북부 지진 사태는 보란 듯이 후쿠시마의 원전에 위협을 가하였다. 제 2 의 체르노빌 사건이 후쿠시마에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후쿠시마 인근 부근에서는 체르노빌 수준으로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되고 그 주변에 사는 주민은 대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 당국에서도 급한 나머지 방사능 규제 정책을 완화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방사능 오염으로 그와 관련된 기사를 찾던 중 내 눈을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내 생각대로라면 오히려 방사능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경계하고 이를 대체하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내가 본 기사는 나의 이상을 철저하게 짓밟고 지나갔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태는 그러려니 넘어가고 오히려 원전 사업에 대해 그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출처 : 매일경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처음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IAEA 사무국과 주요 원전 운영국가들은 "원자력은 여전히 유용하며 원전 확대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을 모았다. 19일 개막해 23일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진행되는 이번 총회에서 151개 IAEA 회원국들은 후쿠시마의 교훈을 되새기며 원자력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평화적 이용은 지속돼야 함을 확인했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더 이상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일본이 처음에는 너무 자신들의 상황에만 집중했고 초기에 정보가 제한적이었다."며 "(후쿠시마 사고 교훈으로)일본과 한국 등은 독립적인 안전 기구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마노 총장은 특히 "후쿠시마 이후 원전 확대가 멈춘 것은 아니며 향후 20년간 90개에서 최대 350개 원전이 새로 늘어날 것"이라며 "세계 에너지 수요와 기후 변화, 화석연료 가격의 불안정성 등 원전 수요를 늘리는 원인들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참으로 나에게는 비관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기사이었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방사능 유출의 피해는 지진에 의해 발생되었다. 그런데도 원전 사업을 주저할 수 없는 이유는 원자력만큼 훌륭한 에너지원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이유가 지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원전을 만들어 원전 사업을 확대하면 모두가 안심할 것이다.” - 요약한 위 기사의 내용이다.




이 부분은 3차 포에니 전쟁의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목을 생각나게 한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도 스키피오의 로마에 무너져 버리고 카르타고와 로마는 협상을 벌이게 된다. 어찌되었든 카르타고도 한 나라로 살아남아야 하였고 어쩔 수 없이 카르타고는 로마의 속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제3차 포에니 전쟁의 시한폭탄 역할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카르타고는 완전 무장한 로마군을 상대로 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공격에 맞섰으나 끝내 로마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원전사업의 전면 확대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에 일본 후쿠시마의 재앙이 있다고 하여 원전을 포기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부담하는 에너지양이 방대한 만큼 원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일본의 후쿠시마 사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설명을 하였고 원전 사업의 확대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기사에서 언급하였다. 인류와 원자력의 위태위태한 동맹으로 보일 지도 모르나 인류는 원자력의 속국이 되어버린 셈임을 기사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일을 원전 사업의 확대로만 볼 것인가? 그렇지 않다. 조금만 관심 있게 이번 일에 대해 살펴본다면 이와 반대되는 긍정적인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기사에서 언급 된 한 일본인 교수의 말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하자. (출처 : 한겨레)

“지난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기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겠다고 결심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세상의 많은 비극은 에너지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긴다.’고 믿어온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일찍이 그는 이런 비극을 없애기 위해서는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기 없는 세상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후지무라 박사는 최근 한국의 정전사태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공통점이 많다고 했다. 두 사고 모두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시스템은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기사에서 언급한 말은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려는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였다. 내가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교수도 전기 없는 세상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는 후쿠시마 사태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였던 대규모 정전에 대해서도 공통점을 찾아내어 그 만의 멋진 통찰력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였다. 전기가 으뜸인 사람에게는 엉뚱하게 보일지 몰라도 말이다.


(사진출처 : HANULABS's blog)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후자의 내용보다는 전자의 대세를 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대규모 정전이라는 황당한 일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올 여름이 위기였다면, 올 겨울도 난방으로 당연히 전력 수급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은 뻔해 보이는 일이다. 당장에 전력 수급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우리나라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결국 한국에서는 또 다시 원전 확대를 들고 주저 없이 시행하리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핵심은 이것이다. 전력 수급문제로 이미 우리나라가 그 어려움에 한 번 당면하였다면 단순한 보강식의 대처는 그릇된 방법이다. 후지무라 교수의 말이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미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건과 대규모 정전 사태로 전기가 더 이상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력의 부재로 개척보다는 물살 빠른 강에 몸을 의탁하려고 한다. 올 겨울을 넘겨 내년이나 내후년의 여름, 겨울을 대비하려고 말이다.




정 그러하다면 당장에 원전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막지 않겠다. 어찌되었든 이상은 이상일 뿐 당장에 전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기가 전부가 아님을 대규모 정전과 후쿠시마 사태로 보고 고정관념의 틀에서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아무리 내진설계가 잘 된 원전이라 하더라도 무적의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원전은 전기 없는 세상을 위한 대체 사업일 뿐 이것이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곤란한 일이다.

무엇보다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전기가 다가 아닌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력부터 출발을 한다. 한 사람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듯이 모두가 전기 없는 세상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그리 부정적인 의견을 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기가 없는 가전제품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 후지무라 교수의 철학은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전기 그 이상의 것을 실현해주는 출발선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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