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은 어떤 대학생을 키우고 있는가
결국 사회로 진출해 ‘침묵’에 빠지는 대한민국 성인
평상시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긴 생각을 누군가 재미있는 기사로 작성을 하였다. 안 그래도 골똘히 생각하던 주제가 있었는데, 그걸 콕 집어서 말해주니 내 속이 다 시원하였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말 그대로 자정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오현태 기자가 작성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 없어 - 자정기능 상실’에서 마지막 구절에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는 “한국 사람은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가까이 내가 의견을 제시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학습하며 자라고있다.”고 문제를 지적하였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공감을 하였는데, 현재 활동 중인 다른 기자단에서 아무리 좋은 내용을 제시하여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런 적이 있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면서 웹 사이트를 꾸밀 때 UI는 상당히 중요하다. PC화면과 모바일 화면이 다르면 이질감을 느껴 구독자에게 혼란을 주게된다. 이런 일련의 단점들을 정리해 상위부서에 보고하였으나 ‘고맙다.’라는 당시의 말만 돌아올 뿐 필자의 기획안에 대한 답변은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없었다.
오히려 주어진 일에 대해 엄격한 관리만 이루어질 뿐이며 기존 구성원과 다른 신입을 선발 후 기존 구성원에게 요구했던 일을 ‘똑같이’ 요구한다. 입사 초기에는 의욕이 앞설 수 있으나 이내 지쳐 순응하게 되고 만다.
잘못된 일을 잘못된 일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이 꼭 너도나도 홍길동을 보는 것만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필자는 그 답이 대학의 교육문제에 있다고 본다. 이미 대학은 지성인을 길러내지 못하고 A+ 만을 배출하고 있는 학점 자판기가 되가고 있다. 경직적 사고로 인해 무조건 적인 순응을 하며 교수가 앞에서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은 책상만 본다. 질문을 하라고 하면 교실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다. 질문을 하라고 했을 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이성적 판단능력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그렇지 못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현 대학 시스템은 지성인을 배출하지 못하고, 지성인의 소양을 갖추지 못한 채 사회로 방류되어 어디 나가서 잘못되었다고 옳은 말을 하지 못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선배가 되었을 때 만약에 후배가 ‘쓴 소리’를 한다면 “네가 감히!”라고 외칠 것이며 후배에게 불이익을 주는 우리네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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